한글학회와 조선어학회, 그리고 우리말 사전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로 조선은 꿈꾸던 해방을 맞이 하게 됩니다.
다만 약간의 큰 문제가 있었는데, 사전 편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원고의 행방이 묘연 해져 버린겁니다.
사건때 증거물로 함흥 재판소로 넘어간 250매짜리 원고가 증간에 증발했다. 이런 말이죠.
함흥 검찰청에 물어보기도 하고, 서울 검찰청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행방은 묘연. 결국은 경성제국대학 학생들은 동원해서(뭔가 같은 계열의 선배님 파워라는걸까요..)경성역 운송부 창고를 뒤져 겨우 찾아 내게되죠.
내용인 즉슨 사건의 증거물로 함흥 법원에서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광복 크리를 맞아 경성역에 그대로 방치. 그렇게 점차 기억속에 잊혀져 버린 거죠. 다행이 원고는 찾았지만 아/야 줄이 소실되서 후에 '큰사전'에서는 가장 미흡한 부분으로 굴욕아닌 굴욕을..
이렇게 저렇게 첫째권 둘째권 셋째권 넷째권 까지 찍어나가지만 (총 6권) 이번에는 6.25 크리를 맞게 됩니다.
뭐 할만하면 사건이 터지니,
서울은 인민군이 점령 해버리고 미군 폭격으로 인쇄에 필요한 기기들도 개박살 크리. 비록 서울은 수복 되었지만 이미 두번 놀란 어학회 사람들은 큰사전 원고를 손으로 복사해서 원본과 필사본은 따로 보관하게 됩니다. 필사본은 최현배 선생의 집에 묻어두고, 원본은 유제한 선생의 고향땅 천안의 땅속에...
1952년 즈음해서 상황이 어느정도 개선되자 한글학회로 개명한 조선어학회는 잘 키핑해놓은 원고를 가져다 작업을 재개하게 됩니다.
앞서 한글학회는 미국 록펠러 재단의 도움으로 인쇄기기등을 원조받아 3권까지 제본했던 적이 있습니다. 인쇄기기가 미쿡 폭격으로 먼지가 되버린걸 알게된 록펠러 재단은 재원조해주는 천조국의 기상을 보여주고
1957년 '큰사전' 6권 전질이 완성되게 됩니다.
...30년...
제가 공부하다 피곤하면 베고 자던 국어사전이 나오기까지에는 이런 뒷 이야기가 숨겨져 있던 것입니다.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로 조선은 꿈꾸던 해방을 맞이 하게 됩니다.
다만 약간의 큰 문제가 있었는데, 사전 편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원고의 행방이 묘연 해져 버린겁니다.
사건때 증거물로 함흥 재판소로 넘어간 250매짜리 원고가 증간에 증발했다. 이런 말이죠.
함흥 검찰청에 물어보기도 하고, 서울 검찰청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행방은 묘연. 결국은 경성제국대학 학생들은 동원해서(뭔가 같은 계열의 선배님 파워라는걸까요..)경성역 운송부 창고를 뒤져 겨우 찾아 내게되죠.
내용인 즉슨 사건의 증거물로 함흥 법원에서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광복 크리를 맞아 경성역에 그대로 방치. 그렇게 점차 기억속에 잊혀져 버린 거죠. 다행이 원고는 찾았지만 아/야 줄이 소실되서 후에 '큰사전'에서는 가장 미흡한 부분으로 굴욕아닌 굴욕을..
이렇게 저렇게 첫째권 둘째권 셋째권 넷째권 까지 찍어나가지만 (총 6권) 이번에는 6.25 크리를 맞게 됩니다.
뭐 할만하면 사건이 터지니,
서울은 인민군이 점령 해버리고 미군 폭격으로 인쇄에 필요한 기기들도 개박살 크리. 비록 서울은 수복 되었지만 이미 두번 놀란 어학회 사람들은 큰사전 원고를 손으로 복사해서 원본과 필사본은 따로 보관하게 됩니다. 필사본은 최현배 선생의 집에 묻어두고, 원본은 유제한 선생의 고향땅 천안의 땅속에...
1952년 즈음해서 상황이 어느정도 개선되자 한글학회로 개명한 조선어학회는 잘 키핑해놓은 원고를 가져다 작업을 재개하게 됩니다.
앞서 한글학회는 미국 록펠러 재단의 도움으로 인쇄기기등을 원조받아 3권까지 제본했던 적이 있습니다. 인쇄기기가 미쿡 폭격으로 먼지가 되버린걸 알게된 록펠러 재단은 재원조해주는 천조국의 기상을 보여주고
1957년 '큰사전' 6권 전질이 완성되게 됩니다.
...30년...
제가 공부하다 피곤하면 베고 자던 국어사전이 나오기까지에는 이런 뒷 이야기가 숨겨져 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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